끄적이

편지

No-mad girl ♥ 2010. 6. 4. 15:49
2007. 1. 20


교토의 분위기. 고요. 평화. 신선함. 고풍스러움.

나는 정말 유혹을 잘 당하는것 같아요. 그러니까 하고싶은것도 이렇게 많죠. 이것도 재밌어보이고, 저것도 멋있어보이고. 모두 놓치고 싶지가 않은거에요. 욕심이 많다고 할수도 있겠다. 감동을 잘받는다고 해야하나. 변덕도 심해요. 저는 내가 주관이 없고 줏대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뭔가 확실한 신념이 있는것도 아니고 내 자신의 모든 부분이 불안한데. 남들은 내가 주관이 뚜렷하다고 그래요. 개성이 강하다고 그래요.

확실한건 내가 언젠가 죽는다는거, 그것 뿐인것 같아요.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건 오직 하나님만 아시죠. 하지만 내가 죽는다는건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나도 모르는 내 미래의 삶은 항상 상상해볼수 있고, 꿈을 가질 수 있고 내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시킬수 있는 부분이지만 죽는다는건. 너무 확실한 기정사실이라서, 무서웠어요.

나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해도, 죽음까지 특별할 수는 없어요. 나도 한낱 사람인데.

사람으로 태어난게 억울하고, 태어나는것 자체가 형벌이고, 차라리 우주의 먼지가 되어서 출생조차 모호하고 죽음조차 불확실한 존재가 되고 싶다고 느낄 때도 있어요.

 

사람은 너무 불쌍해요. 심각하게 살아야하잖아요.

지구상의 다른 동물들은 죽음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대로 사는데.

세상에 자살하는 동물은 없잖아요.

사람은 너무 교만해요.

사람은 시작도 보지 못하고 끝도 보지 못해요.

모두 그 중간에서 살다가 아무것도 모른채 죽는거에요.

쓸데없는 허무주의라고 해도 좋아요.

내가, 또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은 자잘한 지식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끝없는 물음을 통해 얻어지는 깨달음이에요.

그게 진실을 추구하는 자세에요. 

자칫 회의에 빠지더라도, 쉽지는 않겠지만 끝까지 답을 찾아내고싶어요.

사람이 아는 것과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적어요.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깊이 의식하지 못한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난 사람이 너무너무 싫지만 너무너무 좋기도 해요.

내가 확실하게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은 사람이거든요.

나는 사막을 너무너무 좋아하고 고양이도 좋아하고 바다도 좋아하지만 그것들은 그냥 존재할 뿐이에요. 이들이 나를 사랑해주는 방식은 그냥 '있는것'이에요. 그러면 내가 직접 그 안으로 들어가 위안을 얻죠. 사막은 묵묵히 자신만의 풍경을 만들어내지만 내가 그것을 보고 사막이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람은, 바로 나만을 위해 뭔가를 해줘요.

나에게만 하는 말, 나에게만 주는 선물, 나만을 위해 웃겨주고 울려주고.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람과 마음을 주고 받는 것은 외로움을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또한 가장 상처받는 길이기도 해요. 그래서 사람과 관계를 가질때 가장 필수적인 것은 상처받기를 두려워하지 않기인가봐요. 왜냐하면 더이상 외롭지 않게 되는 것에 대한 댓가니까요.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죽을 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많이 많이 사랑을 주세요.

그리고 상처도 많이 받으세요. 자신이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그런데 죽음이 정말 끝일까? 아니면 또 다른 출발일까?